경주시의회 ‘300회기는 앞으로 가는데 의정활동은 뒤로 달리나?

 

5분 자유발언 몇 번이 일 잘하는 의원의 기준인가? “점검하라·협력하라·발굴하라누구나 할 수 있는 주문이다

 

경주시의회가 제300회 임시회를 맞았다지방의회가 걸어온 시간을 생각하면 결코 가벼운 숫자가 아니다.

 

그동안 이어진 회기 숫자는 앞으로 달려 300회까지 왔는데, 의정활동의 수준도 그만큼 앞으로 왔는지 아니면 오히려 뒤로 달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본다.

 

시의원이 되면 우선 지역구 경로당을 찾아 인사하고, 이장을 만나고, 자치위원장들을 만나고 각종 행사장을 찾아다닌다


의회에 들어오면 상임의로 사업을 검토하고 예산을 심의하고, 5분 발언을 한다.


시간 틈틈이 국회의원이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면 공유하고, 조례를 만들 준비를 한다.

 

경로당과 행사장에서 얼굴을 알리고, 본회의장에서 5분 자유발언 몇 번 하고, 국회의원이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면 공유하고, 이쪽저쪽 기웃거리며 지인들이 글을 올리면 좋아요를 누르고 최고예요라는 댓글을 달고, 조례를 만들어 발의하면 그것이 곧 일 하는 의원의 기준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시의원에게는 경주시 예산을 심의하고 삭감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이 있다.

 

이에 공무원들은 사업과 예산을 차질 없이 해내기 위해 의원을 찾아가고 협조를 구하며 의원님, 의원님하며 머리를 숙인다.

 

이것을 의원들은 의원 개인의 힘으로 착각하기 시작한다


공무원이 의원에게 머리를 숙이는 것은 시민이 선거를 통해 부여한 의회의 권한 앞에 설명하는 것이다.

 

본회의장 5분 발언에 대해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


검토해 달라.”

적극 추진해 달라.”

관계기관과 협력해 달라.”

대책을 마련해 달라.”

새로운 사업을 발굴해 달라.”

점검하라, 협력하라, 발굴하라.” 이 정도의 말이라면 굳이 시의원이 아니어도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다.

 

이미 추진 중인 사업에 차질 없이 추진하라고 주문하고 원론적인 당부를 되풀이한 뒤, 이를 의정활동 성과처럼 보도자료로 배포하고 시민들에게 5분 발언을 했다고 알린다.

 

그것이 정책 제안인가, 의원 개인의 홍보인가?

 

물론 모든 의원의 5분 자유발언을 싸잡아 평가하는 것은 아니다


지역의 중요한 문제를 공론화하고 행정이 놓친 문제를 찾아내 실제 정책 변화의 계기를 만드는 발언을 하는 의원도 있다.

 

5분 자유발언은 지방의원에게 주어진 중요한 의정수단이다. 지역 현안을 공론화하고 집행부가 놓친 문제를 지적하며 새로운 정책을 제시할 수 있다.

 

제대로 준비한 5분이라면 행정을 움직일 수도 있다. 그래서 본회의장의 마이크는 무거워야 한다.

 

지난 25일 열린 제300회 경주시의회 임시회 제1차 본회의에서 최재필 의원은 기후위기와 가뭄에 대비한 안정적인 수자원 확보를 주제로 5분 자유발언을 했다.

 

기후위기와 물 부족 문제는 분명 중요한 문제이다


폭염과 집중호우, 가뭄이 반복되고 있는 상황에서 관광도시 경주는 생활용수뿐 아니라 농업·산업용수까지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이다.

 

최 의원의 문제의식이 틀렸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최 의원은 수자원 다변화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문무대왕면 지하수저류댐 국비사업을 차질 없이 추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읍면동별 가뭄 취약성을 점검하고 관계기관과 협력하며 신규 수자원 확보사업을 적극 발굴할 것을 제안했다.

 

모두 필요한 이야기가 맞다. 그러나 뒤집어 한번 물어보자. “경주시가 모르고 있던 내용은 무엇인가?” "경주시가 일을 안하고 있는것인가?"

 

최 의원의 이번 5분 자유발언을 통해 기존 정책과 다른 구체적인 대안은 무엇인가?


이미 추진 중인 사업이라면 추진하라가 아니라 제대로 하는지를 따져야 하는 것이다


문무대왕면 지하수저류댐은 이미 행정이 추진하고 있는 사업이다.

 

그렇다면 의원의 역할은 차질 없이 추진하라는 말이 아닌, 사업은 현재 어디까지 진행됐는가, 착공과 준공 일정에 문제는 없는가, 실제 확보 가능한 용수는 얼마나 되는가, 확보된 물을 생활·농업·산업용수에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기존 상수도 확충사업과 어떻게 연계할 것인가, 이 사업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지역은 어디이며 추가로 필요한 사업과 예산은 얼마인가를 따져 묻는 것이다.

 

이미 달리고 있는 행정에 뒤에서 빨리 달리라고 외치는 것보다, 왜 늦어지는지 찾아내고 장애물을 걷어내도록 요구하는 것이 의원이 해야 할 일인 것이다.

 

또한, 무턱대고 저수율이 평년보다 낮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몇 %인가? 시민들에게 먼저 숫자를 보여줬어야 한다.

 

현재 경주의 주요 저수지 저수율은 몇 %인가? 평년 같은 기간에는 몇 %였으며 얼마나 부족한가? 어느 저수지가 가장 위험하고, 어느 읍면동이 가뭄에 가장 취약한가? 지금 상황이 계속된다면 생활·농업용수에는 언제부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가?

 

기후위기와 가뭄에 대비한 안정적인 수자원 확보를 주제로 5분 자유발언을 준비했다면 최소한 이런 구체적인 자료부터 제시했어야 한다.

 

경주시의 8월 기준 지역 저수지 평균 저수율은 34%로 평년 62%보다 28%포인트 낮았다.

 

생활용수 공급원인 덕동댐의 저수율은 52.8%였고, 덕동댐을 제외한 농업용 저수지 평균 저수율은 26%에 불과했다


특히 안강 하곡지 8%, 내남 박달지 10%, 안강 화산곡지 12%, 강동 왕신지 20% 등 심각한 수준의 저수지도 있었다.

 

이런 숫자를 먼저 보여주고 경주의 물 사정이 지금 이 정도로 심각하다5분 발언을 시작했다면 최소한 의원이 현장을 얼마나 살펴보고 자료를 검토했는지 그 성의와 준비 정도는 시민들에게 전달됐을 것이다.

 

그래야 시민들도 왜 지금 수자원 확보가 시급한지 판단할 수 있다


구체적인 자료와 분석 없이 점검하라, 협력하라, 발굴하라고 주문하는 것과는 발언의 무게부터 달라진다.

 

구체적인 수치와 분석보다 평년보다 크게 낮다고 설명하고 점검하라, 협력하라, 발굴하라고 주문하는 데 머물렀다면 정책 발언으로서 아쉬움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정책은 해야 한다는 말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무엇이 문제인지 보여주고, 왜 발생했는지 분석하고, 얼마의 예산으로 언제까지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제시해야 한다.

 

경주시의회가 300회를 거치는 동안 예산 분석은 얼마나 날카로워졌는가?


행정사무감사의 수준은 얼마나 높아졌는가. 조례의 질은 얼마나 좋아졌는가?


5분 자유발언으로 실제 바뀐 정책은 얼마나 되는가?

 

이제는 행사장에서 얼마나 자주 보이는 의원보다 얼마나 공부하고, 시민을 위해 무엇을 찾아내고, 무엇을 바꾸는 의원인지를 살펴야 한다.

 

보여주기식 발언 몇 건보다 시민의 삶을 바꾼 정책 하나가 중요하다


5분 자유발언을 하고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기사가 나왔다고 일하는 의원이 아니다.


본회의장에서 5분의 마이크를 잡기 전에 내가 5분 발언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를 한 번 더 생각해 보기 바란다.